요즘 다음 뉴스 코너(여기 말고 다른 포털엔 안 가므로 잘은 모르겠지만 포털의 뉴스 코너는 다 그럴 거라고 본다)의 헤드라인은 '살인마 강호순'이다. 온갖 매체에 의해 살인 동기며 과정, 수법 등이 끊임 없이 적나라하게 보도된다. 1월 마지막 날 MBC 뉴스데스크(이거 말고는 다른 공중파 방송사 저녁 뉴스 프로그램은 안 보므로 잘은 모르겠지만 공중파 방송사 저녁 뉴스는 다 그럴 거라고 본다)는 첫 꼭지부터 시작해 대여섯 꼭지를 이 사건만으로 돌렸다. 시국과 관련된 정치적 의도 유무를 떠나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사건 자체가 경악할 만하다는 사실은 수긍한다. 선의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직 수사 중인 사건으로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워야 하겠는가.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사형 폐지론자지만 이런 극악무도한 사건이 발생할 때면 갈등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강호순'은 아직 피고인이 아니라 수사 중인 사건의 용의자 신분이다. 그가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수사기관에 의해 증거물이 확보됐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의 무죄는 여전히 법, 특히 헌법에 의해 추정되며 이는 재판을 받을 권리 등과 함께 일반 시민 모두를 위한 사법적 권리 중 하나다. 헌법이 이를 기본권으로 규정한 이유는 수사기관, 사법기관을 막론하고 모든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를 방지하여 인권을 보장하려는 데 있다.
법이라는 걸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과의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에 따라 법조문이 사문화하고 끝내는 개정되거나 폐지된는 게 순리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그러나 헌법의 권리장전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은 일반의 법감정이 침투할 수 없는/침투해서는 안 되는 인권의 기본원칙이다. 형법을 포함한 모든 처벌법규가 잠재적 범죄자로 겨누는 일반 시민을 사법적 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현장검증'이라는 기사에 달린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댓글에는 300명이 넘는 네티즌이 추천표를 던졌다. 이 같은 폭발적인 호응에 민감하게 반응한 중앙일보가 대범하게도(!)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이번 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클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축소 해석할 수 있다는 법원의 유권해석도 받았다'는 공개 당위성에 대한 근거도 제시했다1. 어느 법원이 그런 유권해석을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그런 유권해석을 한 법원이 있는지는 몰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원의 해석재량이 허용되지 않는 헌법상 기본권 조항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피고인'조차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 원칙인데 아직 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은 용의자에 대해 어느 법원이 총 맞은 것처럼 그런 유권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조문은 '추정될 수 있다'가 아니라 '추정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이 조항이 단순추정규정이 아니라 간주규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게다가 기본권 유보조항인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도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여 법률로써가 아니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데, '무죄추정의 원칙을 축소 해석할 수 있다는 법원의 유권해석도 받았다'는 중앙일보의 기사는 대체 무언가. 법상식이 전무한 기자의 구라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다.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분노는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감정적인 대응으로 원칙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저수에 독극물이 섞여 들어갔다고 댐을 부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차라리 대법원에서 뇌물죄가 확정되었음에도 포토라인에 뻔뻔하게 웃으며 자세 잡는 인간들의 얼굴을 가려 달라는 호소를 우리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질렀으면 좋지 아니하겠는가.

- 중앙일보가 공개 근거로 제시한 다른 하나는 '공익'이다. 풀어 말하면 '공공의 이익'이라는 건데 그게 공익인지 뭔지를 왜, 어떻게 지들 맘대로 파악하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이승만이며 박정희며 전두환이며 오늘의 이명박까지도 그 모든 패악질이 다 '국익'을 위한 거였다. 게다가 지들이 언제 한 번 '공익'이라는 데 마음 기울여 본 적이나 있나? 하여간 못된 놈들한테 못된 거만 배워 가지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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